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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신자가 본 영화 <검은 사제들>의 상징 그리고 해석 / 검은사제들 스포일러 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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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원이형(!) 아버님의 권유로 곧장 <검은 사제들>을 보고 왔다. 그리고 상당히 공들여 후기를 남긴다.

 

이 시간에 이런 글을 쓰고 있는 내가 참 대견하다. 평소 겁도 많은데 말이다(무서운 귀신~). 오늘밤은 바람 소리가 예사롭지 않구나.

 

하지만! 영화 속 몇 가지 상징과 해석이 자꾸 떠올라서 잊기 전에 빨리 정리해본다. 참고로 영화를 한번만 봐서 흐릿한 부분이 많다. 다른 자료도 참고했음을 밝힌다.   

 

약간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었을 가능성이 있지만 중요한 내용은 최대한 배제했다. 오히려 아래 내용을 읽어보고 영화를 보면 더 감흥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나도 관람 후 자료를 보니까 몰랐던 부분을 알게 됐다.

 

추가적으로 중요한 상징과 해석이 있으면 적극 알려주시길. 수정할 부분 지적도 환영합니다.

 

 

 


1. 먼저 <검은 사제들(The Priests)>이라는 제목이 갖는 의미는 무엇일까? 악령으로부터 출산일을 앞둔 여동생의 자궁을 들어내겠다는 저주뿐 아니라 같은 종교인의 비난에도 흔들림 없이 구마의식을 수행하는 사제들. 모든 빛을 흡수하는 색, 검정 사제복을 입고서 ‘가장 (어둡고) 위험한 곳으로’ 향하는 두 사제는 그야말로 '검은 사제들'이다. 

 

2. <검은 사제들>의 모태가 되는 단편영화 <12번째 보조사제>와 연관성은 무엇일까. 줄거리와 등장인물 이름까지 모두 일치하는 것으로 보아 장재현 감독은 본인의 단편영화를 장편으로 확장시킨듯하다. 전편에는 제목으로 미루어보아 부제(보조사제)의 비중이 더 컸던듯하다. 가톨릭에서는 숫자 ‘12’가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예수를 도와 인류를 구원할 무리로서 열 두 제자(사도)를 비롯하여 구원받는 모든 백성을 상징하기도 한다. 유다의 배신으로 결원이 생겼을 때도 제비뽑기로 12인을 유지했을 정도로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 고대에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숫자 12를 완전수로 여겼다고 전해진다(12간지, 12개월 등이 대표적). 영화에서는 10명이 넘는 부제가 견디지 못하고 떠났을 정도로 힘든 역할임을 강조하면서 열두 번째라는 특별한 의미를 부여한듯하다. 그런 맥락에서 12월 12일에 개봉했으면 더 완벽했겠다!

 

3. 영화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는 ‘장미십자회’. 오래전 독일에서 실제로 존재했던 반가톨릭적인 비밀결사로 알려져 있다. 단체명의 유래는 십자가와 장미가 그려진 문양을 썼기 때문. 비밀결사의 특성상 다양한 소재거리로 활용되기도 하는데 반가톨릭이라는 낙인으로 인해 악한 단체로 그려지기도 하지만 ‘검은 사제들’처럼 당시의 비주류로써 ‘뭔가 다른’ 활동을 한 집단은 아니었을는지.

 

 

 

 

4. 독신인 김 신부가 끼고 있는 큼직한 반지는? 묵주반지다. 통상 오른손 검지에 낀다. 김연아도 끼고 있다. 묵주반지는 묵주의 대용으로 기도를 할 때 쓸 수 있다. 금으로 된 묵주반지도 있지만 은반지도 많다. 은(silver)의 경우 악마나 늑대인간을 퇴치할 때 사용하는 성스러운 의미가 있다. 묵주반지는 구입 후 신부님의 축성을 받아야하기 때문에 가톨릭 성물로 여겨진다. 극중 김 신부의 독특한 묵주반지는 그의 굳은 심지와 신앙심을 나타내는듯하다.    

 

5. 구마의식 직전에 김 신부와 최 부제가 뭔가를 나눠 마시는 장면이 나온다. 미사 때 영성체라는 의식이 있다. 최후 만찬 때 그리스도가 빵과 포도주를 축복한 다음 제자들에게 나눠준 행위를 신부가 신자에게 재현하는 것이다. 그때 나눠주는 밀떡(밀빵 혹은 제병)은 그리스도의 살(육신)을 상징한다. 의식 전에 포도주가 든 성배에 밀떡을 넣은 다음 신부가 그것을 마신다. 여기서 포도주는 그리스도의 피(또는 지혜)를 의미한다. 김 신부가 최 부제에게 “조금 비싼 걸로 사오지..”하는 말은 포도주를 이르는 것.  

 

6. 주요 소품으로 등장하는 프란체스코의 종과 묵주, 향로. 악령도 프란체스코라는 이름에 경기를 일으킨다. 프란체스코는 가톨릭 성인이자 프란체스코회 창립자이다.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향락을 추구하다가 20세에 회심하여 청빈, 헌신하는 삶을 살았다. 말년에는 성흔(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힐 때 입은 5개의 상처)을 입은 것으로 유명하다. 참고로 현재의 교황은 프란치스코. 프란체스코에서 유래된 공식 교황명이다. 문득 김 신부의 몸 곳곳에 있는 검은 상처(아마도 구마 과정에서 생긴)를 보며 성흔의 다른 표현이 아닐까 생각해보았다.

 

7. 신부도 술과 고기를 먹는다. 심지어 담배도 핀다. 극중 김 신부의 별명인 ‘깡패’, ‘꼴통’을 두드러지게 하는 묘사로 활용되기도 한다. 단, 신부는 평생 혼자서 자며 소유하는 것도 없다. 육욕과 물욕을 멀리하는 삶으로부터 신부의 영성과 고귀함은 더욱 드높여진다. 그래서 영화에서 ‘귀한 호르몬’을 뿌려대던 장면이 더욱 재미있게 그려진다. (나는 교황님과 모든 신부님 그리고 수녀님을 존경한다.)

 

8. 김 신부는 다시 구마의식을 하기 전에 주교(박웅 분)와 다른 신부들을 만난다. 주교는 ‘공식적으로’ 반대한다고 다소 무뚝뚝하게 말하지만 무언의 동조를 표한다(비공식적인 활동을 해서 검은 사제들인 듯). 이때 영화 <공공의 적2>에서도 비슷한 역할을 맡았던 그의 캐릭터(당시는 지검장)가 떠올랐다. 어쨌든 그는 선역이다.

 

9. 최 부제가 영신과 김 신부의 대화 녹음테이프를 듣는 부분에서 Opus로 시작되는 말을 받아 적는다. 해석하면 ‘도망쳐야해’였나. 나중에 악령이 다시 부추긴다. “도망가. 네가 제일 잘하는 거잖아”라고. 흥미로운 부분은 영화 도입부에 스타팅 크레딧과 제목이 화면에 비치는데 제공사 중 한곳이 'Opus Pictures(오퍼스 픽쳐스)'였다. <다빈치 코드>에 등장한 ‘오푸스 데이(Opus Dei)’에 대한 관심이 있어서 기억한 단어였는데 극중 언급이 된 건 단지 우연일까.

 

10. 강동원의 선임 부제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악령의 대사 중에 “어미의 가슴에 돌덩이를 올린다”던가 하는 내용이 있다. 선임 부제는 집에 일이 있어서 내려 가봐야 한다며 말을 줄이는데 악령이 어머니에게 해코지를 한듯하다.  

 

11. 구마의식 중 영신(박소담)이 뱀을 쏟아내는 장면이 있다. 기본적으로 뱀은 악한 존재로 여겨진다. 악령에게 점령당한 영신의 외모나 말도 뱀처럼 보였다. 가톨릭에서 인간의 원죄는 아담과 이브가 선악과를 먹으면서 비롯된다. 그러한 유혹을 한 악한 존재가 뱀으로 묘사된다. 개인적으로 소름끼쳤던 장면은 악령의 외침보다 본 모습을 숨기고 정상처럼 돌아온 듯 속삭이는 영신의 말이었다. '이제 괜찮아요...풀어주세요..그만하세요.'

 

12. 영신이 누워있던 곳은 한 건물의 꼭대기 층이었다. 가정집을 겸한 세탁소로 보였다. 피폐해진 부모와 결코 여유로움이 느껴지지 않는 공간의 조합. 그럼에도 신앙심이 있었던 영신. 그녀는 김 신부에게 “(악마를) 붙잡고 있을게요..”라고 할 정도로 착한 심성의 소유자다. 엑소시즘이 진행되던 세탁소는 ‘정화(카타르시스)’의 메시지를 품고 있지 않을까? 또한, 영신이 지하(악마 루시퍼의 영역)가 아닌 하늘과 가까운 곳에 누워 있어서 다행스러웠다.  

 

 

 

 

 

 

13. 최 부제가 캠코더로 촬영하는 동안 악령은 반응하지 않는다. 김 신부의 대사가 그 이유를 설명해준다. “그들이 모습을 드러내면 (사람들이) 신을 믿게” 되기 때문. 그리고 악령의 입장에서 정체가 들키면 활동의 제약이 생기고 ‘절반은 지고 들어가는’ 게 된다. 그래서 녹음기에도 날카로운 반응을 보였는데 초상권 침해만 아니면 어느 정도 정체를 드러내는 듯?

 

14. 구마의식 중 바흐의 음악을 틀었던 이유는 그가 생전에 개신교인으로써 신앙심이 깊은 신자였기 때문이다. 바흐는 신앙심을 반영한 음악을 많이 만들었고 미사곡(예배곡)의 대중화에 기여했다고 한다. 악령의 입장에서는 미울 수밖에 없는 인물. 극중 대사에서 악령이 바흐를 유혹하고 괴롭혔으나 통하지 않았던 것 같다.  

 

15. 신발을 모두 팽개치고 뛰쳐나갔던 최 부제. 한쪽 신발을 잃은 것만으로도 고통스러운 삶을 살고 있던 그는 상징적으로 남은 신발마저 버려두고 올 수 없었다. 신발을 가지러 왔다는 대사부터 그의 완전한 속죄와 구원이 시작된다.

 

16. 중요한 순간에 마주선 두 사제. 내려다보는 강동원과 올려다보는 김윤석의 장면에서 피식 웃음이 나왔다. 두 사제가 처음 만났을 때 강동원의 큰 키와 흰 피부를 본 김윤석이 몰몬교냐고 묻는 대사가 나온다. 몰몬교는 미국에서 만들어진 그리스도교의 한 일파이다. 때문에 김 신부의 표현은 전형적인 백인의 외모를 빗댄 것으로 이해된다. 또 김 신부가 최 부제에게 건넨 “네 탓이 아니다..짐승(악)은 자신보다 ‘작은 존재’를 물지 않는다..”는 구원의 말이 훤칠한 강동원을 더욱 두드러지게 한다. 어쩌면 성인이 될수록 최 부제의 죄책감도 함께 자랐을 것이다. 여러모로 최 부제 역의 강동원은 탁월한 캐스팅.

 

17. 최근 강동원 후광 논란이 일고 있다. 어둠 속에서 최 부제(강동원)가 그레고리안 성가를 부르며 향로를 들고 나오는 장면에서 후광이 보였다는 의견과 반대 의견이 분분한 것. 아마도 악령 시점에서 프란체스코와 교차되어 스쳐가는 장면을 보고 착각을 일으킨 게 아닐는지.

 

18. 결말의 해석에 대해 조금 엇갈리기도 하는데 사실 명확한 것 같다. 가톨릭 신자들이 자주하는 말을 빌리자면 “모든 게 주님의 뜻입니다.”

 

19. 강동원의 사제 패션도 화제다. 사제복뿐 아니라 가죽시계, 구두, 가방 등 온통 ‘검은’ 소품을 사용하여 ‘사제 패션’으로 승화시켰다. 물론 극중 어두운 그의 과거와 속박을 상징하는 장치이지만 그냥 멋있게 느껴졌다. 훈남의 표상이던 교회오빠는 저물고 이제 성당오빠가 뜨고 있다. 고맙다(?).   

 

20. 강동원(최 부제)은 극중에서 영적으로 예민하다는 1986년생 호랑이띠로 등장한다. 실제로는 1981년 1월 18일생 닭띠다. 영화에서 그의 세례명은 아가토. 김윤석(김 신부)이 어떻게 지은 세례명인지 묻는다. 보통은 세례를 받는 사람의 생일과 비슷한 축일의 성인을 세례명으로 삼는다. 그러나 최 부제는 본인이 ‘아가토’라는 세레명을 선택한다. 교황이었던 아가토는 그리스도가 신성과 인성을 모두 가진 존재로서 하느님이면서 사람이라는 전통적인 종교적 믿음을 확립시킨 인물. 하느님의 대리인으로써 신부와 과거의 트라우마에 사로잡힌 범인의 경계에 서있는 최 부제를 상징하는 세례명으로 읽힌다. 참고로 아가토 교황의 축일(가톨릭 교회 기준)은 1월 10일로 강동원의 실제 생일과 거의 일치한다.

 

21. 한국판 <엑소시스트>인 <검은 사제들>이 국내에서는 드문 주제의 영화라고 하지만 사실 <퇴마록> 같은 영화가 앞서 있었다. 극중 퇴마 신부 역을 안성기가 맡았었다. 지난 여름에는 <퇴마 : 무녀굴>이 개봉한 바 있다. 물론 퇴마는 큰 틀에서 ‘귀신(마귀)을 물리치는 것’이며, 구마(엑소시즘)는 ‘사람이나 사물로부터 악을 쫓아내는 것’으로 조금 더 구체적으로 들어가면 다르긴 하다.

 

22. 영화 <전우치>에서는 강동원은 전우치 도사로 분하여 요괴와 악한 화담(김윤석)을 물리치는 일종의 퇴마사 역할을 맡았었다. <검은 사제들>에서 다시 만난 김윤석이 강동원을 진정한 구마신부로 거듭나게 하는 점에서 묘한 기분이었다.

 

23. <검은 사제들>의 공식적인 영화 장르는 미스테리, 드라마이다. 공포 영화가 아니라는 말. 해외파 악령의 진상 짓은 역시 스케일이 컸다. 그러나 국내파 원혼이 확실히 더 무서운 듯. 장르를 통해 영화가 전하고자 하는 또 다른 메시지를 곱씹어볼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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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김 신부의 대사가 기억에 남는다.

 

“악은 우리가 짐승과 다르지 않다고 하지. 악은 언제나 그런 식으로 우리를 절망시키지. 하지만 신은 우리를 그렇게 만들지 않으셨다.”

 

<검은 사제들>을 보고나서 마음이 무거웠다. 다른 공포영화와 달리 귀신이 나오는 그냥 무서운 장면이 떠오르진 않았지만 어떤 메시지를 느껴서다. 하필 악령이 들어간 대상은 (가난해 보이는 가정의) 여학생인가. 갖은 협박과 저주를 퍼붓던 악령은 어떤 거대한 사회악 같은 느낌이 들었다. 감옥에서 몇 년 내 피를 토하며 죽을 것이라는 그런 부분. 수갑을 차고 잡혀가던 김 신부의 무기력한 모습. 현실에서는 결말이 어땠을까. 악에 맞서고 진실을 밝히려는 사람들은 고독하고 힘들다. “그냥 저들처럼 모른 척하고 살아가라”던 영화 속 악령의 명령은 어쩐지 현실에서도 낯설지가 않다.

 

 


 

글. 윤거일 lab912@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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