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아내가 결혼했다(My Wife Got Married, 2008)>는 베스트셀러 소설 <아내가 결혼했다>(2006)가 원작이다. 두 작품이 공유하는 줄거리는 거의 비슷하다. 조금 다른 설정도 있지만 대부분 그렇다.
기본 이야기는 노덕훈(김주혁)과 주인아(손예진)의 사랑이야기다. 하지만 보통의 사랑이 아닌 ‘폴리아모리’를 다루고 있다. 인아는 덕훈과 연애를 하고 결혼도 한다. 하지만 인아의 또 다른 사랑 한재경(주상욱 분)이 나타나면서 삼각관계는 요동친다. 나아가 제목 같은 일이 벌어진다. 아내가 결혼하다니! 모든 남편들이 발끈할 말이다. 결국 여자가 바람 핀 불륜 이야기로 볼 수도 있지만 평생 한 사람만 사랑하고, 결혼생활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을 던지는 꽤나 그럴듯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른바 폴리아모리는 <아내가 결혼했다>를 관통하는 키워드다. ‘폴리(poly)’는 그리스어로 ‘많음’을 뜻한다. 아모리의 원형은 ‘아모르(amor)’, ‘사랑’을 의미한다. 합치면 ‘다자간 사랑’이 된다. 폴리아모리는 오래 전부터 존재했고, 오늘날의 일부일처제는 현대에 정착된 하나의 제도일 뿐이라는 이야기가 다양한 사례와 함께 펼쳐진다. 주로 인아의 입을 통해서 말이다.
그렇다 해도 말이 안 되는 내용이라고 많은 비판을 받은 듯하다. 한편으로 큰 인기도 얻었지만 말이다. 최근 인기 드라마인 <부부의 세계>를 보면서 잠깐 폴리아모리와 <아내가 결혼했다>를 떠올리기도 했다.
<아내가 결혼했다>가 그저 그런 불륜 소재의 작품이 아닌 이유는 폴리아모리라는 도발적인 소재를 역사적·인류학적 관점에서 다양한 근거와 함께 설득력 있게 다뤘기 때문이다. 그뿐만 아니라 축구라는 장르를 남녀의 사랑에 빗대어 풀어냈기 때문이다. 새롭고 절묘한 시도였다.
<아내가 결혼했다>를 영화로 먼저 봤는데 주연 배우의 연기가 워낙 탄탄한데다 2002 한일 월드컵 장면과 FC 바르셀로나와 레알 마드리드의 이야기가 현란하게 펼쳐져서 보는 재미를 더했다. 속으로는 공감하지 못했지만 영화니까, 그들의 폴리아모리를 흥미진진하게 지켜봤다. 특히, 결말은 원작 소설과 다른데 영화 마지막에 FC 바르셀로나의 ‘누 캄프’ 경기장면을 비춰줘서 좋았다.
한참 뒤에 원작 소설을 읽었다. 그래서 느낌이 많이 달랐던 것 같다. 소설을 읽고 영화를 본다면 또 다른 느낌일 것이다. 아무래도 소설을 읽는 동안 영화 속 주인공의 얼굴이 떠오를 수밖에 없었다. 덕훈과 인아의 인물상은 소설과 영화가 비슷하다. 재경은 영화 쪽이 더 매력적으로 보인다.
영화에서는 아무래도 생략된 내용이 소설 보다 많다. 가령, 덕훈은 철학, 인아는 사학 전공자이다. 소설을 읽고서야 인아가 폴리아모리를 뒷받침하는 사례를 왜 바싹하게 꿰고 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그녀는 전공 지식도 있는데다 독서광이다. 한편, 인아는 친구가 없다. 부모님은 미국에 있었다. 자칫 외로울 수 있지만 더욱 자유롭게 인간관계를 만든다.
덕훈은 32세이며 회사에서 영업관리직을 맡고 있다. 그리고 레알 마드리드와 지네딘 지단을 사랑하는 남자다. 인아는 프리랜서 프로그래머다. 그리고 FC 바르셀로나와 바르샤 정신을 사랑하는 여자다.
레알 마드리드에서 ‘레알’의 원형은 ‘royal’이다. 스페인 국왕이 부여한 칭호로 친 정부적인 성향을 띤 대표적인 구단이자 세계적인 인기를 모으는 팀이 레알 마드리드다. 반면, FC 바르셀로나는 프랑코 정권에 맞섰던 까탈루냐 지역을 대표하는 구단이다. 자유와 평등, 저항 같은 가치가 투영된 게 바르샤 정신이다. 두 팀이 맞붙는 라이벌 경기를 ‘엘 클라시코’라고 부른다. 전 세계 축구팬이 관심을 갖는 매력적인 경기다. 이런 구도를 이해해야 덕훈과 인아의 관계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그들이 서로가 응원하는 팀과 선수를 예로 들면서 자기 생각을 펼치는 ‘티키타카’는 정말 재미있다. 현실(적어도 국내)에서 접하기 매우 어려운 장면이기 때문이다. 축구 좋아하는 남자라면 완전 공감할 것이다. 하긴 덕훈도 인아에게 마음을 뺏긴 계기가 그녀가 먼저 엘 클라시코 이야기를 꺼냈기 때문이다.
극중에서는 FC 바르셀로나와 레알 마드리드 이야기가 주요 소재로 활용되는데 소설은 더욱 다양한 해외축구 이야기를 활용한다. 각 장을 구분할 때 덕훈과 인아의 이야기를 전개한 다음 축구 이야기로 빗대며 넘어가는 식이다.
영화를 먼저 봤을 때는 소설의 특징 있는 표현 방식(덕훈과 인아의 이야기→축구 비유)이 반복되는 점이 조금 지루할 수 있다. 영화에서 왜 축구 이야기의 많은 부분을 잘라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물론 축구, 특히나 해외축구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소설 쪽이 더 좋을 수 있지만. 사실 원작 소설과 영화를 비교하며 어느 쪽이 낫다고 평가하는 건 무의미하다. 각각의 매력이 있으니까.
소설과 영화 중 먼저 뭘 봐야할지는 모르겠으나 두 가지 다 봐야 <아내가 결혼했다>의 매력을 완전히 느낄 수 있다는 것은 확실히 알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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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아내가 결혼했다>는 신판이 나오면서 두번 더 옷을 갈아 입었는데 두 번째인 2013년 표지가 가장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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