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하는 여행책 세 권. 각 책마다 독특함이 있다.
그 중에서 <31days 807.3km>는 제목과 판형부터 굉장히 색다르다.
일단 판형 및 제본은 수첩 같기도 하고 메모지를 끈으로 묶어둔 모양처럼 보이기도 한다. 확실히 시중에서 잘 찾아보기 어려운 모양새다.
제목이 의미하는 바는 31일간 807.3km를 걸으며 기록을 남겼다는 것. 그토록 긴 시간과 거리를 왜 걸었을까?
책에 포함된 책갈피에 이동 일자와 거리 기록이 새겨져 있다.
책갈피 반대편에는 ‘딴짓’이라고 적혀있다. 이 책을 펴낸 독립출판사의 이름이 ‘딴짓의세상’이다. 대표님이 딴짓을 좋아한다고.
이 책은 2009년, 저자가 스페인 산티아고의 어느 길을 31일간 걸으며 매일 밤 기록한 일기를 엮은 결과물이다.
아담한 수첩 크기의 이 책은 크게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저자가 자필로 쓴 원본 기록, 사진 기록 그리고 옮겨진 기록이다.
2009년판 몰스킨 포켓 다이어리에 빼곡하게 하루의 기록을 남겼다. 여행, 걷기의 생생함이 느껴진다.
기록의 방식을 보면 그 사람의 성격이 나온다.
오늘의 길, 오늘의 지출도 쏠쏠한 재미와 정보를 제공한다.
책의 중간쯤 주로 풍경을, 사람을 담은 사진 기록.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을 동경하는 사람이라면 더욱 좋아할 사진이 펼쳐진다.
촬영 위치가 어디인지 무슨 상황인지 설명이 없는 감성적인 사진모음이라서 공감하기 어려울 수 있다. 다르게 생각하면 무겁지 않게 넘겨볼 수 있어서 좋다.
원본 기록을 가독성 있게 옮긴 기록.
꼭 책을 낼 용도가 아니라도 여행에 나설 때 이런 수첩을 들고 다니며 기록해두면 유용할 것이다. 어디를 가고 무엇을 먹었는지 가격이나 기분은 어땠는지 당시는 소소하게 느껴진 것들이 시간이 지날수록 귀중하게 느껴진다.
사람은 추억을 먹고 산다하지 않았나. 그런데 또 망각의 동물이라서 먹고 살 추억이 자꾸 줄어든다. 그래서 기록은 소중하고 이런 류의 책을 좋아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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