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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진남자 프로젝트

사세보 버거, 사세보의 휴식여행 [먹진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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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의 봄, 휴식이 절실했다.

 

창업 2년차. 나는 쫓기듯 일하고 또 일했다. 다행히 즐겁고 보람찬 시간의 연속이었지만 뒤를 돌아볼 여유 따위는 없었다. 오직 앞만 보고 달렸다. 그리고 찾아왔다. BURNING-OUT.

 

내 안에 뜨겁던 뭔가가 다 타버린 듯 한 순간이 온 거다. 누구도 아닌 나를 위해서 열심히 일했는데! 모든 의욕이 사라져버렸다. 어쩔 수 없이 휴가를 갖기로 했다. 때마침 일본에 살고 있던 지인의 결혼식에 초대를 받았다. 돌이켜보면 행운이었다. 덕분에 짧은 휴식여행을 떠날 결심이 섰다.

 

휴식여행. 단어의 조합이 묘하다. 휴식은 정적이고 여행은 동적인 느낌이니까. 그런데 목적지였던 사세보는 그 단어가 참 잘 어울리는 곳이었다.

 

인근의 후쿠오카나 나가사키 보다 한적하지만 항구도시 특유의 정취를 간직한 사세보. 그곳에서 나는 잠시라도 한국의 일을 잊고 여유를 찾고 싶었다. 계획은 간단했다. 낯선 거리를 천천히 걷고 눈에 띄는 먹거리를 마음껏 맛보는 것. 사람과 풍경을 구경하는 것으로 족했다.

 

 

 

 

유명 관광지인 하우스텐보스는 애초에 관심이 없었다. 그저 사세보항 주변을 어슬렁거렸다. 자판기 아이스크림과 푸딩, 케익 같은 달콤한 디저트는 가급적 손에서 놓지 않았다. 출출해지면 상점가에서 평범한 일본식 카레와 커틀렛으로 식사를 해결했다.

 

사세보의 자랑인 햄버거를 먹은 건 귀국 전날이었다. 워낙 햄버거 맛집이 즐비해서 구경만 하다가 마지막에 한 곳을 선택했다. 사세보항과 마주한 히카리버거였다. 가게 안에서 먹을 수 있었지만 굳이 싸 들고 나갔다.

 

 

 

 

 

 

야외 의자에 자리를 잡고 보니 멋진 풍경이 펼쳐졌다. 노을을 맞이한 물결은 수줍게 살구빛으로 변해갔다. 전에 이런 장면을 본 적이 있었던가? 어둑해질 때까지 스케이트 보드를 타는 친구들이 있어 심심하지도 않았다. 매 순간을 온전히 음미했다.

 

솔직히 지금은 히카리버거의 맛이 희미하다. 분명한 기억은 최고의 순간에 맛 본 햄버거였다는 것. 그곳의 햄버거는 패스트푸드가 아니었다. 실제 만들어지는 시간도 먹는 시간도 느릿하게 흘러갔다. 평소 잘 부르지도 않던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가 절로 나왔다. 나는 여유의 포만을 느끼고 있었다.

 

고백하건데 혹시나 하는 생각에 노트북과 일거리를 들고 갔었다. 결국 인터넷 불통으로 짐이 됐을 뿐이지만. 웃음이 나왔다. 미련했던 자신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대신 자책하지 않고 다음에는 그러지 말자…혼잣말로 넘겼다. 마음이 정말 가벼워졌다.

 

바쁜 일상 속으로 돌아가더라도 괜찮았다. 잔잔했던 사세보의 휴일을 기억하고 또 기약하면 다시 달려나갈 수 있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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