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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적 연구

인생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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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겐 인생교훈이 있다. 찬란했던 20대의 한편을 장식한 국회인턴십. 청운의 꿈을 안고 입성했던 국회였지만 말단 비서였던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리 많지 않았다. 때마침 의원실에서 주최한 행사의 사진 촬영을 맡게 되었다. 뭔가를 보여주고 싶던 참에 해봤던 일이라 마음껏, 열심히 사진을 찍어댔다. 나중에 보좌관님이 따로 불러 수고했다는 말을 건넸다. 그리고 잊지 못할 한마디를 덧붙였다. “윤 비서, 열심히도 좋지만 조금 더 멋지게 해봐.” 어떤 일을 열심히 하는 것보다 잘하는 게 중요하다는 말이 있다. 그런데 멋지게 일을 해내기란 훨씬 어렵다는 것을 훗날 깨달았다. 어쨌거나 멋지게..일하고 살아가게 만드는 주문이 되었다.


다시 대학원에 들어간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연구실 회식이 있었다. 새로운 전공, 새로운 관계에서 역시나 잘 보이고 싶었던 마음으로 가득했던 박사과정 막내는 고기 집게를 들었다. 삼겹살 정도야 석사과정 때 ‘마스터’했던 나다. 하지만 변수는 가위였다. 벌어진 가위 날이 잘 들지 않아서 살짝 당황했지만 나름 줄맞춰 정갈하게 구웠다.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매의 눈을 소유하신 지도교수님이 나지막하게 한마디 했다. “윤 선생, 천천히 다시 잘라봐.” 서걱서걱. 깔끔하게 잘리지 않고 끊긴 느낌으로 고기 끝이 계속 삐져나왔던 것이다. 긴장한데다 능숙하게 보이고 싶어서 조금 서둘렀나보다. 다시 불판 위에 고기를 올렸을 때는 천천히 더 잘 구울 수 있었다.


예상치 못한 상황과 장소에서 들은 한마디가 내겐 그 어떤 말보다 중요한 인생교훈이 되었다. 다그치거나 닦달하는 대신 부드러운 한마디. 때로는 훨씬 강한 영향력을 발휘한다. 최근 되새길 일이 있어서 그때를 떠올려본다. 다시 천천히, 멋지게 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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